'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이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
기원전 369년에 태어난 장자는 '제물론'에서 꿈 속 세상을 이야기한다. 약을 한 건 아닐까 하고 심히 의심해 볼만하지만, 어쨌든 그는 꿈 속에서 나비가 돼 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회고한다.

 

요즘에는 굳이 꿈에서 나비가 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상현실'기술이라면 나비가 돼 보는 일은 소박한 꿈에 속한다. 하늘을 나는 것은 물론이고 바닷속 깊은 곳을 탐험한다거나, 우주 저편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가상현실 기술은 주목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단서가 따라 붙는다. 누군가가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야만' 새로운 세계를 체험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판타지'는 언제쯤 충족될 수 있을까. 과연 꿈에 그리던 설현을 가상현실상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몇 년 째 꿈속 세상에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아직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 가상현실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이들에게 답을 구해 봤다.

현재까지 인터뷰를 진행해 본 결과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만이 상상하는 '가상현실'이라는게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가진 개성 만큼이나 상상하는 가상현실도 천차만별로 갈린다. 누군가는 조선시대를 주름잡는 문호를, 누군가는 판타지 세계의 영웅을, 누군가는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는 등산가가 되는 가상현실을 원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시간과 장소, 세계는 다르지만 '그 세계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발자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가상현실상에서 살아볼 수있는 MMO(다중접속온라인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개발자금이나 구매 의사 등 소위 '어른들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지만 기술력만큼은 지금 당장 한 시대를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블루사이드 이대원 VR콘텐츠본부장은 "가상현실을 원하는 이들의 공감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퀄리티의 문제일 뿐 3년 이내로는 이 같은 콘텐츠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현재 상황에서도 스팀에는 가상현실 세계를 구현한 MMO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역시 퀄리티의 문제일 뿐 숲을 모델로한 가상현실이나, 체육관을 모델로한 게임들이 이미 등장해 있다. 개발비만 있다면 그래픽 요소들을 충분히 덧붙여 보다 리얼한 가상현실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결코 틀린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이 '현실과 가능한한 유사한 가상현실'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전체 답변자 중 80%는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원하는 시대에서 원하는 인물로 살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자 추구하는 '완벽한 가상현실'에 대해 차이가 있을 뿐, 완성도를 끌어올린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으며, 이 것들이 유저들을 만족하게 할만한 콘텐츠라 자신했다.

다만 이 같은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뇌과학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50%)라고 단서를 단다. 현재 가상현실 기기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기술들이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재 가상현실 기기로는 보여줄 수 있는 수준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유저가 직접 콘트롤러를 움직이거나 외부 요소를 이용해 게임을 즐기는 환경이 된다면 '현실에 가깝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소프트웨어적 발전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전체 응답자 중 30%는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기술들이 좀 더 발달한다면 그것이 사람의 기능을 대신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인공지능이 실제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다른 요소들은 크게 중요하지않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이 상상하는 가상현실을 들어 보면 그 이유가 눈앞에 보인다. 게임 'GTA'와 같이 현실 세계에서 신적인 존재가 되는 가상현실을 이야기하는 개발자에서 부터 '헌터X헌터'에 등장하는 '그리드 아일랜드'과 같은 세상을 가상현실로 만들겠다고 하는 개발자, 역사적인 전투에 참가해 보는 경험, 세계적인 섹스 심벌들과의 데이트, 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 등 다양한 답변이 인상적이다.

이 같은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한다. 산배 오범수 대표는 "아직은 한계점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가상현실과 기존 게임상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루사이드 이대원 VR콘텐츠 본부장은 "가상현실을 가장 비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획(Virtual Unreality)를 추구한다'며 역발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키엔터테인먼트 강기윤 대표는 '시간과 공간을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짧게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중이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촉감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개발중이라는 기업, 시각정보와 동기화되는 감각인지기술을 개발중이라는 이야기까지 각자 기획하고 있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발자들은 제대로된 가상현실 세상이 구현되는 시기에 대해서는 각자 답변이 달랐다. 전체 50%가 10년이내, 20%가 20년 이내를 주목했다. 근시일내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 낼 것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괜찮다. 몇 년이 지나든 설현은 이쁠테니까.